KPGA 오픈 4위에 오른 정승환. (사진=KPGA 제공)

[레저신문=오상민기자] 이수민(27)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지난 19일 충남 태안 솔라고컨트리클럽(파72ㆍ7263야드)에서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KPGA 오픈(총상금 5억원ㆍ우승상금 1억원) 우승 트로피는 이수민의 차지였다. KPGA 코리안투어 통산 4번째 우승이다. 역시 이수민이란 소리가 나온다.

축하받아야할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투어프로 데뷔 18년차 정승환(36ㆍDS이엘씨)이다. 그의 성적은 4위였다. 그냥 4위가 아니다. 프로 데뷔 후 개인 최고 성적이다. 2015년 6월 군산CC 오픈(공동 10위)과 2017년 4월 동부화재 프로미오픈(공동 9위)에서 톱10에 들었지만 이번만큼 성적이 좋진 않았다. 대회 마지막 날엔 처음으로 챔피언 조에서 플레이했다.

“감이 좋았다. (전날) 잠을 잘 자서 컨디션도 좋았다. 별로 떨리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편안하게 플레이했다.”

담담한 소감이다. 속마음도 그랬을까. 그는 이수민이 우승 기쁨을 누리는 사이 남들은 알 수 없는 오만 가지 감정에 휩싸였을 듯하다. 기쁨과 보람, 희열, 짜릿함, 흡족함이 밀려왔고, 한편으론 안도와 가능성, 희망, 자신감, 자부심, 자긍심, 자존감이 피어올랐다. 또 다른 한쪽에선 씁쓸함, 아쉬움, 착잡함, 간절함이 파고들었다.

정승환 본인만의 생각이다. 그 오만 가지 감정 따위는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승부의 세계는 그렇게 처절하고 맹혹하고 잔인하다.

정승환은 누구인가. 무명 프로골퍼다. 무명이라는 슬픈 쇠고랑을 찬 채 무려 18년이나 필드를 전전했다. 2003년 투어프로로 데뷔했고, 2013년 정규투어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련이 시작됐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부 투어를 오르내렸다. 숱한 좌절을 맛봤다.

“학생들 레슨하면서 생활했다. 일반인 레슨도 했다. 남자 투어가 시합도 많지 않고 개인적으로 성적도 좋지 않아서 그렇게 안하면 생활이 되지 않았다. 힘들게 정규 투어에 올라왔는데 시드전으로 밀려났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호흡이 깊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섞여 나오는 목소리였다. 꽤나 힘들었던 시간이었다는 걸 깊은 호흡에 묻혀 나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챌린지(2부) 투어 7회 대회 우승(2015년 7월)을 차지하며 희망을 쏘아 올렸다. 인내력과 성실성이 입증된 결과였다.

정승환은 장점이 많다. 신장 180㎝의 쭉 빠진 몸매와 잘 생긴 얼굴은 모델도 부럽지 않다. 기술적인 부분은 더 완벽하다. 드라이버부터 퍼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단점을 찾기가 어렵다. 구력에 비해 큰 대회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 한 가지 특기를 꼽으라면 망설여진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최경주 선배가 좋다. 도전의 아이콘이니까. 나에게도 꿈과 희망을 줬다.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최경주 선배만큼은 아니라도 꾸준한 선수로서 남고 싶다. 올핸 (코로나19 때문에) 시합이 많이 줄었다. 남은 시합 잘 치러서 내년 풀시드를 따내고 싶다. KPGA 오픈보다 좋은 성적도 내고 싶다.”

목표가 우승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목표치고는 소박하다. 아마도 오랜 무명 생활이 목표마저도 소박함이라는 원치 않는 틀에 가둬버렸는지도 모른다. 세월의 무게다. 그 흔한 ‘우승’이란 말조차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세월의 무게가 버거웠던 걸까.

‘KPGA 오픈보다 더 좋은 성적’이라는 말엔 분명 우승도 포함된다. 정승환도 그것을 모를 리 없다. “KPGA 오픈보다 더… 좋은… 성적을…”이라며 느릿하게 말을 이어가면서 분명 ‘우승’이라는 뜨거운 두 글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이제부터 시작이다”가 아니었을까. ‘우승’이라는 뜨거운 두 글자 대신 후원사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모습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를 후원하는 회사(DS이엘씨)가 있다. 전부 여자 선수인데, 내가 남자로는 처음으로 계약을 했다. 사장님께서 나를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웃음). 덕분에 좋은 성적도 냈다. 더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20년 세월의 무게와 씨름하는 선수가 있다. 이수민의 우승에 가려진 이면을 보라. KPGA 코리안투어의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정승환이 보인다. 놀라운 성실성과 인내력이 보인다.

오상민 기자  ohsm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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