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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민의 현장X파일]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된 이오순 신화
1993년부터 3년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에 오른 이오순. (사진=KLPGA 제공)

[레저신문=오상민기자] 어려운 결단이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의 일본행이 성사되기까지는 6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1993년부터 3년간 KLPGA 투어 상금왕을 차지하며 국내 여자골프를 평정한 이오순(57ㆍFX렌트)의 이야기다.

1990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이오순은 1992년 10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첫 우승했다. 당시 KLPGA 투어는 절대강자 없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고우순(55)이 1989년부터 4년간 상금왕에 올랐지만 1993년부터 일본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고우순이 빠진 KLPGA 투어는 박성자(54), 김순미(55), 강춘자(63), 고(故) 한명현, 정길자 등이 패권을 다퉜다. 박세리와 김미현(이상 42)도 아마추어 신분으로서 무서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오순보다 강한 선수는 없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여자골프 최강자 이오순에게 국내 무대는 좁았다. 그는 늘 큰 무대를 꿈꿨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김애숙, 이영미(이상 56), 고우순, 원재숙(50), 신소라(47)도 일찌감치 일본에서 자리를 잡은 상황이어서 더 그랬다.

그렇다고 서두르진 않았다. 프로데뷔 당시는 첫 우승이 우선이었고, 우승 뒤에는 ‘국내에서 상금왕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준비가 덜 됐다고 판단한 이오순은 국내에서 3년 연속 상금왕 꿈을 이룬 뒤 일본으로 향했다.

이오순이 JLPGA 투어에 데뷔한 1996년은 시오타니 이쿠요(57), 히고 가오리(50), 후쿠시마 아키코(46) 등이 맹위를 떨쳤고, 일본인 첫 미국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상금왕 오카모토 아야코(68)는 일본 복귀 후에도 건재함을 과시했다. 통산 50승으로 6차례나 상금여왕에 오른 후도 유리(43)도 1996년 신인전 가가전자컵을 통해 데뷔했다.

이오순이 일본 무대에 데뷔한 건 1996년이다. 당시 JLPGA 투어엔 구옥희를 비롯해 김해숙, 김만수, 이영미, 원재숙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사진=KLPGA 제공)

일본은 한국보다 한수 이상 위였지만 이오순의 성공 가능성은 낙관적이었다. 이오순보다 먼저 일본 무대를 밟은 고우순은 레귤러 투어 데뷔 첫해(1994년)부터 2승을 달성했고, 원재숙도 한해에 3승을 휩쓸며 상금순위 3위에 올랐다.

일본선수들도 이오순을 견제했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김치, 태권도, 서울올림픽, 조용필 정도였다. 한국에 대한 편견이 있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대체로 자신들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해서 무엇을 해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오히려 이오순의 전의를 불타게 했다.

하지만 이오순은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손에 들지 못했다. 1998년 상금순위 32위가 7년간의 JLPGA 투어에서 얻은 개인 최고 성적이다. 불명예였다. 1990년 이후 국내 상금왕이 JLPGA 투어에 데뷔해 우승하지 못한 건 이오순이 유일하다.

실력도 체력도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이오순이 JLPGA 투어에 데뷔한 1996년은 한국나이로 35세였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기량을 끌어올리기엔 한계가 있는 나이였다.

일본 진출과 함께 찾아온 퍼팅 입스(샷이나 퍼팅 실패에 대한 불안 증세)는 결정적이었다. 입스 극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는데 크게 효과를 보진 못했다. 거기에 왼쪽 팔꿈치 엘보까지 겹치면서 통증을 달고 살았다.

35세 늦은 나이에 일본에 진출한 이오순은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손에 들지 못했다. (사진=KLPGA 제공)

후원사였던 휠라와의 인연도 끊어졌다. 일본 진출 시 국내 대회 7개 이상 출전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오순은 후원사도 매니저도 없는 혹독한 상황에서 끝도 없는 부진 늪에 빠져들었고, 매 시즌 시드전을 오가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오순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 건 2002년 시즌을 마친 시점이었다.

혹독한 상황에서도 이오순이 일본 잔류를 고집한 이유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최다승(43승) 보유자 최상호(65)의 조언 때문이었다. ‘국내 시장은 대회 수도 상금 규모도 작은데 어린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실력 있는 선배들은 해외 무대에 도전하는 게 좋지 않겠나’라는 조언이었다. 이오순 역시 후배들과 국내 골프발전을 위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서른다섯 베테랑 이오순의 일본 무대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의 도전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선배 골퍼의 진중한 조언을 가슴에 새기고 현해탄을 건넌 그였다. 어린 후배들을 위해 국내 최강자 타이틀을 스스로 내려놓았고, JLPGA 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QT) 참가를 위해 일본을 찾은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집(도쿄 시나가와 고탄다 소재)을 숙소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

비록 우승컵은 손에 들지 못했지만 선구자 고(故) 구옥희를 시작으로 김만수(54), 김애숙, 원재숙, 이영미, 고우순, 신소라 등과 함께 1990년대 여자골프를 풍미했다.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후배 선수들의 해외 투어 도전에 훌륭한 길라잡이가 됐다. 승리지상주의 속에서 실패라는 이름으로 매몰된 위대한 도전이었다.

오상민 기자  ohsm31@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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