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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같은 여전사 강수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공식 은퇴경기인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시즌 33번째 대회 노부타 그룹 마스터스GC 레이디스를 하루 앞둔 강수연. 현역 선수로서 마지막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오상민 기자)

한편의 드라마였다. 22년간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총 12차례의 우승컵을 거머쥐며 한국 골프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강수연(42)의 종착지는 일본 효고(兵庫)현 미키(三木)시 마스터스골프클럽이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시즌 33번째 대회 노부타 그룹 마스터스GC 레이디스 대회장이다.

199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강수연은 2004년까지 8승을 장식했고, 2005년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세이프웨이 클래식 정상에 오르며 골프 인생 정점을 찍었다. 출중한 실력은 물론이고 ‘필드의 패션모델’로 불릴 만큼 패션 감각도 탁월했다.

이렇게 편안한 모습은 없었다. 노부타 그룹 마스터스GC 레이디스 1라운드 플레이 중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강수연. (사진=오상민 기자)

하지만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아니면 어린 후배들의 도전을 감당할 수 없었던 걸까. 2005년 세이프웨이 클래식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수연이란 이름이 팬들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프로골프계를 조용히 떠난 줄만 알았던 팬들도 적지 않았다. 2013년 JLPGA 투어 스탠리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 우승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강수연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 무대에 둥지를 튼 것은 지난 2011년이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다. 웬만한 한국 여자선수는 이미 은퇴를 했을 나이지만 그의 몸에선 아직도 골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때 ‘필드의 패션모델’로 불릴 만큼 탁월한 패션 감각까지 지녔다. 사진은 노부타 그룹 마스터스GC 레이디스 2라운드 플레이 모습. (사진=오상민 기자)

서른다섯 베테랑의 투혼은 처절했다. 한국과 미국 투어를 전전하면서 온몸은 이미 종합병동이 된 상태였다. 매 대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투혼을 불태워야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들이 그를 괴롭혔다. 미국에서 자유롭게 투어 생활을 하던 그였기에 일본의 투어 시스템을 이해하고 적응하기엔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일본 무대 데뷔 후 3년 가까운 시간이었다. 우승에 목말라 있던 그의 어깨엔 엄청난 중압감이 짓누르고 있었다. 그 때 함께 투어를 전전하던 후배들이 큰 힘이 됐다. 또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을 하나 둘 내려놓으니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기다리던 우승이 찾아왔다. 무려 8년 만에 거머쥔 우승 트로피였다. 팬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그였기에 우승 감동은 더 컸다.

노부타 그룹 마스터스GC 레이디스를 하루 앞두고 선수로서 마지막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진행했다. (사진=오상민 기자)

강수연은 일본에서 8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투어 생활을 이어갔다. 대회 때마다 호텔을 옮겨가며 8년이란 시간을 버텨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 한 차례도 상금시드를 잃지 않았다. 마흔을 넘긴 뒤에도 두 차례나 우승을 추가했다. 2016년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 골프 토너먼트와 지난해 리조트 트러스트 레이디스에서다.

사실 강수연은 박세리(41)나 박인비(30ㆍKB금융그룹), 신지애(30ㆍ쓰리본드)만큼 세계 골프사를 움직인 큰 인물은 아니다.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적도 없으며, LPGA 투어 다승자도, 메이저 대회 우승 경험도 없다.

그러나 한국 골프사에서 그의 발자취를 지울 수 없는 이유는 큰 틀에서 두 가지 위업 때문이다. 첫째는 한국과 미국, 일본 투어를 각각 장기간 경험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ㆍ미ㆍ일 3국 투어에서 전부 우승한 선수는 11명(토토 재팬 클래식 포함)이지만 3국 투어를 1년 이상 경험하며 우승한 선수는 6명뿐이다.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몇 안 되는 선수이자 한ㆍ미ㆍ일 3국 투어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수다.

둘째는 40대 이상 베테랑 선수가 없던 국내 골프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40대로서 두 차례나 우승하며 나이가 들어서도 레귤러 투어에서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노부타 그룹 마스터스GC 레이디스 개막을 이틀 앞둔 지난 16일 후배 선수들과 송별회를 겸한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식사 후 기념촬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사진=KPS 제공)

강수연은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를 지낼 만큼 알아주는 엘리트 선수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강수연이 프로 데뷔 전에는 주먹구구식 행정에 우격다짐 코칭시스템이 당연시됐다. 어린 시절부터 학업은 뒷전이고 혹독한 훈련에만 초점이 맞춰진 선수들은 대부분 짧고 굵은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강수연과 같은 선수가 탄생했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일부에선 더 할 수 있지 않았냐는 아쉬움 섞인 지적도 있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는 한ㆍ미ㆍ일 3국 투어에서 총 8차례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람 같은 여장부이자 올해 우승한 JLPGA 투어 최고령 선수다.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기록이 아니다. 어지간히 골프에 미치지 않고선 불가능했을 기록들이다. 22년간 꾸준한 자기관리와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기에 그의 22년 투어프로 인생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그의 매니지먼트사 대표이자 일본에서 8년간 동고동락한 김애숙 프로는 “골프라는 게임을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한국 골프계 또 하나의 별이 사라졌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를 보내는 마음이 아쉬움만은 아니다. 비록 선수로선 아니지만 또 다른 도전을 위해 필드에 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땐 ‘필드의 패션모델’이 아닌 ‘필드 위 야전사령관’으로서 골프계를 호령할 것이다. 22년을 불사르고도 부족했던 열정이 남아 있기에.

오상민 기자  ohsm31@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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