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먼 곳에 있으며 겨울에 초목이 마르지 않고 벌레가 움츠리지 않는 곳이다.” 조선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해남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남도다. 더는 나아갈 수 없는 땅끝마을까지 와서 작은 벌레가 된 자신을 돌이켜 봤다.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은 겨울에도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서울에서 천리를 달려야 도달하는 먼 길이다. 해남 땅끝마을이 남쪽의 끄트머리라면, 한반도 북쪽의 끝은 함경북도 온성이다. 그래서 해남에서 서울까지 1000리이고, 서울에서 다시 온성까지를 2000리가 되는데, “삼천리 금수강산”이란 말이 여기서 나오게 된 것이다. 땅끝마을의 정식 지명은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다. 

땅끝마을도 여느 바닷가의 마을처럼 바다를 안고 있고, 해풍에 나무들이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었다. 봄 기운이 완연했다. 매화나무의 꽃망울이 잔뜩 무거워진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녹차밭은 연두빛 여린 잎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 빼고 있었다. 한 마리 작은 벌레가 된 심정으로 땅끝마을의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 땅끝마을의 시작 땅끝 전망대와 땅끝 탑
일단 땅끝마을에 오면 관광안내소에 있는 안내책자를 한 부 챙기는 게 좋다. 남도에서도 가장 남쪽으로 비죽하게 튀어나온 해남 여행을 하기에 나침반 같은 게 하나쯤 필요하기 때문이다. 관광안내소는 보길·노화도행 배가 오고가는 선착장 부근에 있다. 땅끝마을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이다. 광주, 목포 등 주변 도시로 오고가는 고속버스도 여기를 통한다. 

땅끝마을의 시작은 땅끝 전망대와 땅끝 탑이다. 땅끝의 찐짜 끝을 알리는 땅끝탑은 우리나라 한반도의 발 뿌리를 상징하는 탑이다. 송호면 갈두마을 사자봉 아래에 건립된 땅끝탑에 서면 푸른 바다가 한 눈에 펼쳐진다. 남도의 크고 작은 섬들인 진도,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조도 등이 땅끝탑을 향해 도열해 있다. 

시인 김지하는 땅끝마을에 와서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 (중략) 내 마음속에 차츰 크게 열리어/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린다”며 풍광을 노래했다.

땅끝탑에서 땅끝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잘 정돈된 산책로가 나 있다. 계단과 나무 데크가 이어져 걷기에 그만이다. 저녁 무렵 땅끝전망대를 마주한 채 바다로 입수하는 태양은 땅끝을 찾은 이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이곳이 일출은 물론 일몰 포인트로 꼽히는 이유다. 땅끝전망대가 위치한 갈두산은 한반도의 기가모이는 기의 응혈점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땅끝희망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땅끝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은 산책로 말고도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다. 올라갈 때만 모노레일(왕복 4000원, 편도 3000원)을 이용하고 내려오는 길에 땅끝탑으로 향하는 것도 추천한다. 지난 2005년 개통한 395m의 모노레일카다. 실제 모노레일에 올라 타보니, 마치 구름을 타고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남해의 해안절경과 쪽빛바다의 아름다움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 한쌍의 매미 형태인 맴섬, 일출 백미
사실 땅끝마을의 백미는 맴섬 일출이다. 한쌍의 매미를 닮았다고 해서 맴섬이다. 땅끝 바다를 배경으로 선착장 앞에 자리한 두 개의 섬인 맴섬 사이로 해가 뜬다. 맴섬 일출은 한반도의 최남단인 땅끝의 상징적인 의미가 되고 있다. 

맴섬 한가운데로 해가 떠오르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은 언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바위섬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은 일 년에 단 두 차례 2월중순경과 10월 중순경에만 볼 수 있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사진기를 들고 부러 찾아오는 곳이다.

사람이 몰려들면 길이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것은 당연지사인가 보다. 해남 땅끝마을에는 걷기 좋은 길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땅끝 순례길은 동백향 가득한 상록수림이 어우러진 산길, 돌담이 예쁜 마을고샅길, 마늘밭 황토밭 들길, 바닷가 모래사장을 아우르는 해변길등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있다. 

▲ 43km의 땅끝길, 바다와 해안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색다른 여행
땅끝길은 총 43km다. 땅끝바닷길(8km), 점재길(6km), 묵동갯길(11km), 쇠노재길(18km)등 4코스의 테마로 구성됐다. 이중 제1구간인 땅끝바닷길을 걸어봤다. 땅끝바닷길 8km에는 편의점, 화장실 등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의 길이었다. 그나마 중간 중간 쉴 수 있게 마련된 벤치가 있어 잠시 멈춰서 남도의 바다와 해안의 절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을 빼먹지 않았다. 

땅끝마을이라고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땅끝, 이라는 상징성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힘을 가졌다.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새해를 맞이하거나,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할 때 우리는 끝이자, 새로운 시작점에 가고 싶은 모양이다. 해남 땅끝마을은 희망을 품고 싶은 사람에게 제격인 남도다.

<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왕진화 기자  wjh90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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