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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만 30m, 700살 땅부자 소나무, 예천 천향리 석송령지역을 대표하는 명물 소나무, 추정 수령 약 700년

[레저신문=정찬필기자]

석송령_용트림하 듯 가지를 뻗은 석송령 <사진=한국관광공사>

천연기념물 천향리 석송령을 4~6월 매월 둘째 주말, 6월에는 8~9일 이틀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보호책 안쪽에서 만날 수 있다. 평소에는 보호책 밖에서 보거나 마을 정자에서 그 위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나무 한 그루 둘러보는데 무슨 야단일까 싶지만 석송령이라면 다르다. 석송령은 추정 수령이 약 700년으로 줄기 둘레가 4.2m, 높이 11m에 이르는 고목이다. 무엇보다 반송 품종 소나무다. 반송의 반(盤)은 대야, 쟁반 등을 뜻한다. 줄기가 밑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퍼지는 형태가 특징이다. 석송령은 수관 폭이 무려 30m에 달한다. 크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멀리서 보면 소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솔숲인 듯하다.

▲ 거대한 석송령, 매년 재산세 16만원 내는 소나무

석송령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이 거대한 반송이 세금을 납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매해 꼬박꼬박 대략 16만원 가량의 재산세를 낸다. 토지를 소유한 까닭이다. 석송령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천향보건진료소, 천향1리마을회관 일대가 석송령의 땅이다. 웬만한 동네 부자 못지않다. 땅을 소유한지 어느새 약 100년이 다 되어 간다.

사연은 이렇다. 약 600~700년 전 풍기 지방에서 홍수가 나서 떠내려 온 나무를 마을 사람(지나가던 사람이라고도 한다)이 건져내 심었다. 수백 년이 지나니 마을의 안녕과 소원을 비는 나무(洞神木)가 되었다. 석평마을 살던 이수목 씨도 마을 지킴이 소나무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 절반을 딸에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석송령에게 남겼다.

토지 소유권을 등기한 과정도 흥미롭다. 토지 대장에 올리기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은 이름이 석송령(石松靈)이다. 마을 이름 석평에서 성을 따서 석(石)씨가 되었고 이름은 영험한(靈) 소나무(松)라 해 송령이다. 나무가 재산을 소유하는 건 요즘은 불가한 일이지만 주민등록제도가 없던 1927년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름처럼 신령스러운 석송령의 자태 <사진=한국관광공사>

▲ 하늘 가린 솔잎의 천국, 그늘 아래는 다른 세상

석송령의 재산은 석평마을 석송령보존회에서 관리한다. 석송령의 토지에서 나온 임대 수익은 석송령 보호와 마을 장학 사업에 주로 사용해 왔다. 아이들이 줄어든 지금은 마을 공공사업에도 쓰인다. 석송령의 재산도 불어나 3,937㎡이었던 토지는 어느덧 6,248㎡로 증가했다.

소중한 나무이니 만큼 귀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주변으로 보호책을 둘러 출입을 금한다. 매해 정월대보름 석송령에게 동제를 지낼 때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석송령 그늘 안으로 걸음을 들였던 이들은 안과 밖이 다른 세상이라 놀란다. 거대한 반송의 품에 발을 딛는 순간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머리 위 30m 구간이 온통 솔잎으로 뒤덮인다. 오래 산 소나무가 너른 가지로 끌어안는데 그 푸른 온기가 사람들을 다독인다.

이번 한시 개방 행사의 제목을 ‘석송령~ 나를 안아줘’라 붙인 건 그 때문이다. 방문객들은 종종 석송령을 안아주라는 말로 오해해 서너 사람이 손을 맞잡고 나무를 안고는 한다. 실은 반대다. 석송령이 석평마을을 안아주듯 찾아온 이들을 꼭 안아주겠다는 뜻이다.

석송령 푸른 그늘의 평온을 안긴다 <사진=한국관광공사>

▲ 종자를 맏아 후계목 양성, 기념 노래도 제작

지난 1996년 9월에는 석송령의 종자를 받아 후계목을 양성했다. 이제 청년이 된 두 그루가 석송령과 마을 사이에 씩씩하게 자란다. 석송정에서는 석송령과 후계목이 겹쳐 보이는데 괜히 내 자식인양 흐뭇하다.

석송령 노래비도 있다. ‘천년 세월 돌고 돌아 석관천을 들어서니, 칠백 년 석송령이 그림같이 장관일세’로 시작하는 노래다. 지역 가수 홍인숙 씨가 부르고 석만수 씨가 작사했다. 눈에 익어 돌아보니 마을회관 1층 찹쌀떡 가게 이름과 겹친다. SBS의 ‘생활의 달인’에 나왔던 지역 맛집으로 가게 사장이 석만수다. 가게 이름 역시 그의 이름을 땄다. 그가 고향 예천을 떠나 대전에서 생활하다 돌아와 석송령을 마주하고 느낀 바를 적은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가 ‘석송령’이다. 노랫말을 읽고 보니 ‘푸른 솔가지마다 새들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6월 8~9일 개방일의 동시 출입 인원은 석송령 뿌리 보호를 위해 30명으로 제한한다. 문화관광해설사와 같이 돌아보게 되는데, 석송령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한시 개방이 끝나더라도 보호책 바깥에서는 석송령 관람이 가능하다.

 

정찬필 기자  gvd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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