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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거목, 골프 거목 호암 이병철 회장의 비록 - <10> 안양 골프장 출신은 골프장 업계에 진출하여 100% 성공하였지만, 동래 컨트리 출신은 거의 성공을 못 하였다.

이병철 회장의 한국 골프 산업계에서의 기여는 독보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경제나 골프 모두 3대 강국 중의 하나인 일본의 최고의 골프 전문가를 일찍이 용병하였다. 골프장의 설계는 물론 수십 년 간 코스 관리의 조언을 받아 수준을 획기적으로 올려놓았다. 서비스의 수준은 회장께서 친히 원 포인트 교습 방식으로 이틀에 한 번씩 오셔서 하셨으니, 안양 골프장의 품질은 개장 10년도 안 되던 1970년대에 이미 세계 수준에 진입해 있었다. 그 결과 전직 장관 출신도 안양의 회원이 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을 만큼 클럽의 권위를 올려놓았다.
그러한 세계적인 고수 골프 관계자들과 이병철 회장의 수준에 맞추려니 직원들은 애를 먹었다. 안양CC를 가히 “지옥의 훈련장”이라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과정에서 ‘총지배인의 평균 수명이 9개월’이라는 통계도 나오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지옥의 훈련 끝에 탄생이 된 것은 안양맨이었다. 
그 당시 남들이 흔히 좋아하는 말 삼성맨이라는 말을 우린 사용하지 않았다. 삼성맨 중의 삼성맨은 안양맨이고, 총수의 직강을 이처럼 광폭적으로 전수받는 그룹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러니 정말 어려웠지만, 그 가운데에서 잉태된 자부심이 안양맨이라는 호칭으로 탄생하였다. 
이러한 안양맨이 이루어낸 기적 같은 통계가 하나 있다. 그것은 “안양 출신이 골프장 업계에 진출하여 성공한 확률이 완벽히 100%이었다.”라는 사실이다. 이 기록은 삼성그룹 어느 회사도 흉내 낼 수도 없었고 그 어느 나라에서도 없을 것이라 자부한다. 
하루는 업계에 진출한 안양맨 중 어느 한 사람이 전화가 왔다.
“지배인님, 제가 배운 것 50%만 발휘했는데 일 잘한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순도 100%의 진실이었고, 계속해서 이곳저곳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그 사람은 골프장 업계에서 일하고 싶을 때까지 화려한 경력을 남기면서 명예제대를 하였다. 대부분의 안양맨들의 족적 또한 모두 그러하였다. 
그 뒤 필자는 북경 백작원CC의 위탁경영을 맡은 첫날 현지 중국 직원들을 모아놓고 선언한 말이 있다.
“여러분들은 중국 골프장의 스카우트 대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소임이다.”라고 선언을 한 것이다. 그 결과는 중국 골프장 업계에 CEO로 스카우트 된 사람이 무려 20명 이상이었던 것으로 증명시켰다. 모두 우리가 안양에서 회장으로부터 배운 지옥의 훈련 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 한다.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배운 것의 내용을 분류해보면, 지식은 3할, 의식이 7할이었다. 따라서 지식은 때로는 다른 골프장에 비하여 떨어져도 의식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지식 그것은 전혀 무용지물이 되게 하였다.

동래베네스트


그러나 똑같은 삼성, 똑같은 에버랜드 소속이었던 동래CC 출신은 거의 성공을 못 하게 된 이유는 딱 하나뿐이다. 안양은 이틀에 한 번씩 회장으로부터 지옥의 훈련을 받았지만, 동래는 1년에 한 번 정도 현장에 가시니 그 단단함을 배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안용태 GMI 회장
안용태 회장은 체육학 박사(골프코스디자인)로 삼성그룹 에버랜드㈜상무이사 (안양컨트리클럽 총지배인 10년) 및 한국잔디연구소 창설, 초대소장(4년 재임)과 그린키퍼 학교를 창설했다. (주)대명레저산업 대표이사와 일동레이크 골프클럽 대표이사를 거쳐 골프경영과 정보 발행인, GMI컨설팅그룹 대표이사 및 대한골프전문인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레저신문  webmaster@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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