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특집기획 금주의 핫이슈
이종현 편집국장이 비껴서 본 <유신일 론(論)> “중학시절, 교회 성가대에서 맛본 아이스크림이 지금의 ‘최다 골프장’ 운영을 낳았다”미국, 일본에 골프장만 25개 운영, 미 PGA웨스트 골프장 인수는 세계가 경악하는 대사건으로 평가

한국산업양행 유신일 회장을 표현한다면 여행사진 작가 톰 로빈스와 헬렌켈러의 말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톰 로빈스는 “예술, 훈련, 기술 습득은 어떠한 활동을 할 때,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예전에 형성한 한계를 뛰어넘고, 무모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밀어 붙일 때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했다. 헬렌 켈러는 “쉽고 편안한 환경에서는 강한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만 강한 영혼과 통찰력이 생겨 마침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유신일 회장이 그렇다. 그는 절대 만족하지 않고 무모할 정도로 한계를 뛰어 넘으려 했다. 또한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강한 영혼과 통찰력이 생긴다는 신념으로 지금의 글로벌 경영을 실현할 수 있었다. 1975년 사회에 첫 발을 디딘 뒤 1988년 한국산업양행으로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이래 그의 머릿속 전구는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 유신일 회장 개인의 번영도 있었겠지만 그 기저에는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과 그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던 강한 의지가 더 있었다.

유신일 회장은 지난 4월 27일 북 콘서트가 아닌 사업가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삶에 대한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최근 미PGA 웨스트 골프장 인수는 미국에서 조차 쇼크로 불릴 만큼 많은 화제가 됐고 이제는 개인 사업자 유신일이 아닌 대한민국의 골프 황제 ‘유신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서울 종로 자하문로에 위치한 ‘역사책방’에서 ‘골프왕’ 유신일 회장의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북 콘서트가 아닌 사업가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삶에 대한 콘서트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이에 본지는  유신일 회장을 특집으로 꾸민다. 

 

▲내 삶에 있어 ‘골프’라는 단어는 너무도 생경(生硬)할 뿐이었다.
그리스에는 ‘선박왕’ 오나시스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골프왕’ 유신일 회장이 있었다. 
유회장은 자신의 삶속에 ‘골프’라는 단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골프왕’이라는 이름으로 토크콘서트를 연다는 것 역시 너무도 생경할 뿐이었다. 그 시작은 유 회장의 고교 동창이자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 서울대 과학기술 최고 과정 오종남 명예주임 교수의 권유였다. 4월 초순 경, 차 한 잔 하던 중에 오 교수는 “친구의 걸어온 골프사업과 삶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아서 더 많은 대중과 공유하고 동기를 부여시키자”고 한껏 권했다. 
장소도 백영란(서울대 역사학과) 대표가 운영하는 문화 역사의 정점 ‘역사책방’ 공간 이어서 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오종남 교수는 골프왕 유신일 회장의 토크 콘서트에 “친구의 성공은 시기 질투가 아니며 성공을 같이 기뻐해 줘야한다”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골프를 통해 성공했고 그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지를 듣고자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 회장 역시 미국과 일본에 그것도 명문골프장들로 구성된 25개의 골프장을 인수해 운영할 줄 몰랐다고 말한다. 대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인해 불분명한 미래의 연속이었다. 탄탄한 회사에 들어가 가장 빠른 안정을 희구하려 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첫 직장에서 평생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만한 곳이 아니었다. 오너의 거친 말과 행동, 인격조차 무시당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사표를 냈다. 1977년 현대상선에 입사하면서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았던 골프가 삶에 찾아들었다.

▲“인간은 도전과 극복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키워 낼 수 있다” 현대상선 동경지사 시절
그 당시 현대그룹은 가장 저돌적인 회사였다. “되고 안 되고 가 문제지 이유는 필요 없다”라는 것이 현대 맨 들의 생각이자 철학이었다. 유 회장은 1981년 현대상선 일본 동경지사로 발령이 났다. 물설고 막막한 이국땅에서 그것도 비즈니스를 해야 했다. 사막 한 가운데 놓인 심정이었지만 도전하고 결과를 내야만 했다. 거래하는 일본기업 임원을 끊임없이 만나 성사시키려 했지만 결코 녹록치 않았다. 마침 담당 임원이 골프 마니아라는 소식을 듣고 벼락치기 골프 레슨을 통해 라운드 약속까지 잡았다. 1번 홀서 티샷을 하는데 무려 5번 헛스윙을 할 만큼 엉성했다. 오히려 18홀 내내 일본 임원이 코치를 해줄 정도였다. 그 일로 인해 다행히 비즈니스는 원만하게 성사됐다. 골프가 사업에 있어 왜 가교역할을 하는지 절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인류가 진보한 것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의해서라는 말이 있다. 만약 유신일 회장이 골프를 포기했거나 골프 라운드를 시도하지 않았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골프왕’ 유신일은 없다. 무모하지만 절박함으로 도전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해진 것이다. 
골프와의 첫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골프장을 다니면서 많은 사업의 실마리가 풀려나왔다.
당시 일본 골프장은 골프사업이 최고의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한국은 골프장 수가 30개 내외로 열악했지만 그 미래만큼은 밝다고 판단했다. 결국 새로운 미래를 위해 현대상선을 그만두기로 했다.

▲사표수리 설득하기 위해 “사장님은 지금에 100% 만족하십니까?” 화두 던지자 수리해줘.
유신일 회장은 1988년 현재 기업의 모토인 한국산업양행을 설립했다. 심사숙고해 사표를 냈지만 당시 현대상선 박세형 사장은 끝까지 사표수리를 해주지 않았다. 이에 유 회장은 “사장님은 지금에 100% 만족하십니까?”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박 대표께서 아무말없이 보내주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 인연을 통해 연락을 하며 만나고 있는 인생 선배이다. 
첫 사업의 시작은 컴퓨터를 이용한 양말 생산이었다. 생각처럼 발전하지 않았고 빠르게 섬유 사업은 접었다. 꾸준하게 준비해온 골프장 장비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마침 국내서도 골프장 건설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좀 더 나은 코스관리와 선진기술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바로네스 장비를 국내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서도 골프전동카트 시대가 열릴 것을 대비해 야마하와의 계약을 통해 국내에 ‘터프메이트 4백 골프전동카트’를 도입시켰다. 또한 4명의 골퍼가 탈 수 있는 5인승 골프카의 빠른 도입으로 국내 골프장 선점을 통해 사업 입지를 넓혀갔다. 
사실 편년식으로 보면 사업이 순조롭게 번창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본골프코스 장비회사와의 계약 때는 14개 업체가 신청서를 낼 만큼 치열했다. 더군다나 실적하나 없는 업체를 누가 높이 평가하겠는가. 열정과 도전정신, 그리고 진정성이 녹아들어 있는 적수공권(赤手空拳)을 통해서 계약을 따냈다. 국내서도 마찬가지였다. 골프장에서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지만 좋은 제품과 앞서가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인정받기 시작 했다. 돌이켜 보면 저절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구에겐가 진정성 있게 다가서고 그 열정을 인정해줘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골프 선진국 일본열도에 한국인 최초로 골프장 9개를 인수 운영하다.
2003년에는 그가 꿈꿔 왔던 일본 최고의 명문골프장 요네하라 골프클럽을 인수했다. 일본 골프계는 충격에 빠졌다. 이후 2019년 야마시로 골프클럽까지 인수하면서 9개 골프장을 현재 일본서 운영 중이다. 많은 혹자들은 왜 9개 골프장씩이나 일본서 인수 경영하느냐고 묻는다. 
유신일 회장은 한국의 서비스, 한국인의 저력 그리고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서 였다고 말한다. 또한 그 당시 일본은 버블경제로 골프장이 어려웠기 때문에 민사재생법을 통한 저가 매수가 가능하였다.  
지바현에 위치한 이즈미 골프장은 일본 내 2500개 골프장 중 '최고 서비스 골프장'으로 16년 연속 선정됐다. 이는 유신일 회장이 인수한 이후에 달라진 평가와 인식이다. 유 회장은 개인의 영광만이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생각에 더 가슴 따듯해 옴이 솔직한 심정이라 피력한다. 이제는 일본 회원과 직원 및 주변에서도 유신일 회장 골프장 경영을 인정하고 배우려 하고 있다. 일본이 오히려 한국 골프 경영자에게 관심과 벤치마킹을 하고 싶어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중학교 때 먹은 미국산 아이스크림 동경이 미PGA웨스트를 품게 하다.
어릴 적 교회 성가대에서 먹어본 소프트 아이스크림 맛 때문에 커서 미국에 가고 싶다는 동경을 가졌다. 그 작은 단초가 지금의 PGA웨스트를 품게 만들었다. 일본 골프장에서의 성공과 한국인 경영을 인정받으면서 미국 골프장에 대해 눈을 돌렸다. PGA웨스트 골프장이 한국 기업에 매각되자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아니 미국골프장의 자존심이었기에 쇼크라는 평가였다. 2018년 우드 랜치 골프장 인수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총 16개 골프장을 인수했다. 미국서도 한국산업양행의 조그만 사업가가 아닌 대한민국 골프가 미국 중심에 들어오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PGA웨스트 골프장이 한국 기업에 매각되자 미국서도 큰 화제가 됐다. Photo By Evan Schiller


PGA 웨스트를 인수 한 후 회원들과의 첫 만남에서도 유머러스하게 에피소드로 대신했다  한국에서 골프를 치러가다가 차가 완파될 정도로 큰 사고가 났는데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이 “어 골프는 칠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겨우 차에서 빠져 나와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이 ‘빈 스윙’이었다는 말을 하자 모두가 공감하고 반겼다. ‘골프 마니아’, ‘골프 홀릭’이라는 공감대 하나로 환호하고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어릴 적 맛본 소프트 아이스크림 한 개가 미국을 꿈꾸게 했고 이젠 최고의 골프장을 인수하는 가교 역할을 했다. 끊임없는 목표와 도전이 있으면 그 대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듯하다. 유 회장이 미국 골프장 사업에 눈을 돌린 이유도 바로 “골프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는 점에서다.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세계를 향해 계속 도전하라고”

 


“나는 골프장 사업을 통해 내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시키고 싶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바로 골프사업이었고 일본, 미국서 명문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유신일 회장은 쉼 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 변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는 강직함을 통해 지금의 골프왕으로 불릴 수 있었다. 쉼 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것 역시 사업 시작 초기에 어차피 마이너스 인생이라서 실패해도 제자리라는 생각때문이었다. 또한 일본에서 경험한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사업의 자양분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만약 “8년간 적당히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지”라고 생각했다면 현재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사업 성공과 일본 골프장 운영 성공이 미국서도 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골프는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이자 한국 골프가 세계 중심에 설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어쩌면 미국 골프장에 눈을 돌릴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젊은 인재들의 세계화, 글로벌화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청년들이 세계로 계속 진출하고 도전해서 한국인의 우수성과 세계의 중심임을 보여줘야 한다. 
전 세계에서 두 명의 탐험가를 꼽는다면 로버트 팰컨 스콧과 어니스트 섀클턴일 것이다. 두 사람은 동시에 남극을 탐험했고 스콧은 9개월 간 연락 두절 된 채 “더 이상 기대 하느니 신사처럼 죽겠다”며 7명의 대원과 함께 사망했다. 반면에 섀클턴은 27명의 대원들과 함께 “절대 절망하지 않겠다. 구조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꿈을 간직한 채 무려 2년을 기다린 끝에 구조될 수 있었다.
유신일 회장은 “삶도 사업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 기회가 올 것이다.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우리 젊은 인재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어 “그들에게 작으나마 내가 걸어온 길이 계기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토크콘서트를 끝냈다.         
 <자하문 역사책방=이종현 국장>

이종현 국장  huskylee12@naver.com

<저작권자 © 레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종현 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