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링턴CC를 다녀 온 날엔 마치 지난 밤 꿈결에 중세 유럽의 귀족이 되어 따스한 햇살이 있는 성벽을 거닐며 한나절의 꿈을 꾼듯하다. 몽환적 분위기와 펼쳐지는 잔디의 색깔은 가히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든다.
그 곳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무너뜨린 웰링턴 장군의 대저택 같은 웰링턴성(城) 같다. 정문에 정복의 문지기가 예의바른 경례를 하고 현관에는 근위병들이 도열하여 기계 같은 동작으로 영접한다. 날개를 활짝 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독수리 휘장과 웅장하고 높은 천정이 있는 홀을 지난다. 귀부인의 사뿐한 발소리를 따라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면 마가목, 단풍, 키 큰 소나무 등이 어우러져 성(城)을 감싸고 골프코스로 통하는 넓은 정원에는 아름드리 팽나무 잔디밭이 펼쳐진다. 마치 사냥을 떠나는 귀족들의 무리에 섞여 있는 듯한 착각과 그 우쭐함이 라운드 내내 스며든다.

웰링턴성(城)의 색조는 수 백 년의 풍화작용을 거친  샌드스톤의 브라운(brown)이고 정원과 골프장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은 그린(Green) 이다. 그 속에서 보라(purple)로 장식된 유니폼, 카트, 티, 스코어 카드 등 각종 소품들이 살아 움직인다. 보라색은 차갑고 화려하며 우울함과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까탈스러움이 있다. 3색의 조화 속에 정통 프라이빗 웰링턴CC는 격조 높은 고객만족의 고전적 서비스와 현대적 디지털이 절묘하게 뒤섞여 있다.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국내외 저명 설계가와 골프장 경영자가 토론방식으로 참여하여 합리성을 찾고 개성을 강조했다. 2010년 완공 후에도 3년의 시간을 더 투자해 완벽함을 추구한 웰링턴CC는 수채화 같은 아름다움과 전설의 맹수들이 기다리는 3개 코스 27홀로 탄생했다. 몸통에 독수리의 날카로운 앞발을 가진 그리핀(griffin), 불사조 휘닉스(phoenix), 화살촉 꼬리에 날개달린 비룡 와이번스(wyvern)가 그들이다. 마녀의 성이고 비밀의 정원인가 싶다. 여심을 자극하고 남자의 호기를 발동시키는 착각과 궁금함이 시종 따라 다닌다. 

▲능선과 수림이 오묘한 웰링턴코스 
세 개의 코스 중에서 초기에 오픈된 그리핀 코스는 능선과 숲속의 요정을 만나듯 산기슭 수림의 오묘함이 있다. 의도적이라기보다 원상에 가까운 지형지물을 살린 것이다. IP 지점에서 겨우 그린이 보이는 완만한 도그렉(Dog leg) 홀이 많다. 강약이 절묘하게 잘 조화를 이뤄야 원하는 스코어를 낼 수 있다.

휘닉스 코스는 평원의 언덕이라 표현할 정도로 자연림과 잘 어울리는 넉넉한 호수가 배치된 가운데 억새와 훈풍이 주는 가을정취는 방심을 유도한다. 와이번 코스는 매 홀마다 계류와 계곡과 레이크가 배치되어 있어 사생결단으로 도전해야 한다. 세컨드 샷은 자신감이 없으면 멀지 않은 크리크까지 한 타를 먹고 끊어서 넘겨야 한다. 골퍼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챌인지 코스이다. 대표적으로 좌 도그랙 2nd 지점부터 그린까지 이어지는 큼지막한 해저드와  크리크릍 지나야 그린 공략이 용이한 파5의 5번홀을 만난다. 만만해 보이지만 망망대해의 일엽편주 같은 파3의 7번홀과 오거스터의 아이젠하워 트리를 연상케 하는 9번홀 IP 지점의 두 그루 나무는 끝까지 긴장감을 풀지 못하게 만든다.

골프의 역사는 잔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샷의 감각, 샷의 가치, 촉감, 시각적 품질 등을 향상시키고 있다. 웰링턴cc 또한 잔디 구성에 또 다른 시험적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데 우리 기후풍토에 최고의 생육조건을 구비한 우리나라 들잔디 (학명 Zoysia japonica)에 한지형 양잔디 라이그라스를 혼합하여 페어웨이를 조성했다. 들잔디는 병충해에 강하고 직립성이라 공을 잘 받쳐주지만 가을 이후는 하고현상(夏枯現象)으로 잎이 황갈색으로 변하고 잔디가 약해진다. 반면 그 반대 특성을 가진 라이그라스가 그 약점을 대신하여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버시딩을 통해 두 성질의 잔디를 상호보완 시켰다. 아직은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장점만을 강조한 선택이 성공적 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 성공은 마치 웰링턴 장군이 승리의 귀환과 함께 아름다운 성에서 모처럼 만의 따스한 햇살 받으며 잔디밭을 거니는 것과 비교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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