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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민의 현장 JLPGA] 김하늘과 캐디 고타니 겐타의 하늘 빛 하모니

티잉그라운드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주의엔 몇몇 카메라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갤러리는 없다. 잠시 후 낯이 익은 여성 프로골퍼가 적막감을 깨고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섰다. 그녀는 티샷 후 카메라맨들에게 힘없는 인사를 건네며 페어웨이로 내려갔다.
 1년 뒤. 그녀가 같은 코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결 밝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V자’ 포즈까지 취했다. 그녀는 이날 수많은 갤러리가 둘러싼 18번홀 그린에서 주인공이 됐다. 시즌 첫 우승이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통산 두 번째 우승이었다.
2016년 3월 일본 미야자키의 UMK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악사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 최종 3라운드 풍경이다. 주인공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 출신 김하늘(29ㆍ하이트진로)이다.
1년 전 자존감 없는 얼굴로 티잉그라운드에서 내려오던 그였다. 그의 표정에선 1년 사이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김하늘의 달라진 표정과 행동은 성적으로 나타났다. JLPGA 투어 데뷔 첫해였던 2015년엔 개막 이후 17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톱10에 들지 못하며 고전했다. 급기야 한국으로의 복귀를 결심하고 도쿄에서 살던 집까지 팔았다. 먼싱웨어 레이디스 도카이 클래식에서 기적 같은 우승을 이루기 전까진 그랬다.
비록 데뷔 첫 해 첫 우승을 달성하며 다음 시즌 시드를 획득했지만 좁고 까다로운 일본 코스는 김하늘에게 여전히 두렵고 불편한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1년 사이 전혀 다른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충실한 동계훈련을 통한 자신감 회복이었다. 2015 시즌을 마친 뒤 중국 광저우에서 동계훈련을 실시한 김하늘은 프로데뷔 이후 가장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다고 한다. 실제로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요인을 뽑는다면 주저 없이 ‘일본인 캐디 고용’이라 말하고 싶다. 김하늘은 일본에 대한 사전정보가 거의 없이 JLPGA 투어에 뛰어들었다. 국내 무대 잔류 선언 후 심경변화로 인한 갑작스런 진로 변경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즐기는 골프’뿐이었을까. “말도 통하지 않고 친구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즐기면서 플레이하고 싶었죠. 그래서 캐디는 한국인을 고용했어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지만 결과는 혹독했다.
그런 그가 2016년 새 시즌을 앞두고 변화를 시도했다. ‘즐기는 골프’보다 ‘투어 적응’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일본인 캐디로 교체한 것이다. 현재 김하늘의 캐디를 맡고 있는 고타니 겐타(33ㆍ小谷健太)와의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2015 시즌 최종전이자 메이저 대회 투어 챔피언십 리코컵은 둘의 시험 무대였다. 결과는 15위. 톱10엔 들지 못했지만 상위 랭커 30명만이 출전한 왕중왕전 개념의 대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난한 성적이었다.
새 시즌 첫 승전보는 예상보다 빨리 전해졌다. 2016 시즌 개막 이후 3개 대회에서 전부 톱10에 진입한 김하늘은 시즌 4번째 대회 악사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장식했다.
김하늘ㆍ고타니 콤비는 시즌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리코컵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2016 시즌 2승을 달성, 2년 연속 상금여왕에 오른 이보미(29ㆍ노부타 그룹)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김하늘은 한때 상금순위와 메르세데스랭킹(올해의 선수), 평균타수 1위를 휩쓸었다. 시즌 종반 스즈키 아이(23ㆍ일본)에게 상금여왕 자리를 내눴지만 시즌 내내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이보미를 대신할 JLPGA 투어 한국인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고타니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호리코시(堀越)고등학교와 주쿄(中京)학원대학을 졸업한 평범한 청년이었다. 골프가 좋아 프로 캐디 일을 시작해 정연주(25ㆍSBI저축은행) 등 많은 선수와 호흡을 맞췄지만 이렇다 할 실적은 없었다.
그에게 내세울 점이 있다면 꼼꼼함과 성실성이다. 일본에서도 근면하기로 소문난 그는 야디지북 정리와 벙커 정비에도 소홀함이 없다. 무엇보다 약속에 철저했다. 약속시간 10분 전에는 미리 나와 김하늘을 기다렸다. 대회장-호텔 사이 운전도 맡고 있어서 시간약속에 민감한 김하늘로선 큰 짐을 던 셈이다.

 과묵하면서 진중한 성격도 김하늘과 잘 맞았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김하늘과 달리 고타니는 좀처럼 말이 없고 질문에만 충실하게 답해주는 타입이다. 언어적 불편으로 스트레스가 컸던 김하늘이 코스에서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유명한=유능한’ 캐디로 단정할 순 없다. 지난 2년간 고타니가 보여준 열정과 성실성이 그것을 입증했다. 결코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 고타니는 김하늘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하늘빛 플레이’를 이끌었다. 전문 캐디 인재 육성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는 국내 골프계에 보여준 아름다운 하모니다.

필자 / 오상민 (스포츠ㆍ골프 칼럼니스트 겸 가압골프 인스트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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