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한반도를 그릴 때 보통 이런 식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의 구불구불한 리아시스식 해안을 따라 한참 달리다가 상대적으로 완만하고 평평한 동해안에 진입하면 손의 긴장감이 확 줄어든다. 그 전환점에 반드시 우리는 동쪽으로 돌출된 지형을 만나게 된다. 바로 호랑이의 꼬리다.

한반도의 동쪽 끝은 포항의 호미곶이다. 호미곶을 가는 방법은 2가지다. 먼저 중부내륙, 경부, 익산포항고속도로를 타고 5시간 달리는 방법이 첫 번째다. 도착 내내 한국의 내륙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첩첩의 산세를 감상할 수 있는 길이다. 

또 다른 길은 돌아가는 길이다. 광주원주, 영동고속도로를 내달리면 강원도 강릉이다. 거기서 160km를 동해대로(7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무려 7시간이 소요되는 대장정이다. 그럼에도 동해의 바다를 왼편에 놓고 드라이브하는 맛이 충분한 코스다. 

그렇게 내륙의 산중 맛을 보거나, 동해의 바다 내음을 물씬 맡다 보면 호미곶에 도착하다. 한반도의 최동단이다. 호미곶을 한자로 쓰면 ‘虎尾串’이다. 각각 범 호, 꼬리 미, 땅 이름 곶을 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호랑이 꼬리 마을’을 뜻한다. 한반도는 호랑이 형상이다. 호미곶은 꼬리 부분이다. 육지에서 바다를 향해 돌출된 경우 붙여지는 이름이 바로 곶이다. 

▲ 2000년 새워진 조형물 ‘상생의 손’ 국민의 화합 염원 담아
실제 호랑이가 꼬리로 무게 중심을 잡듯이 호미곶은 한국 사람을 결집하고 한데 어우르게 하는 힘이 있다. 일단 호미곶에선 이색적인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상생의 손’이다. 지난 2000년 1월 1일 세워진 청동 조형물이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면서 국민들의 화합과 상생을 이루자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바다에는 오른손이, 육지에는 왼손이 우뚝 솟아 있다. 오른손은 8.5m, 18t 이고, 왼손은 그보다 조금 작은 5.5m 13t으로 청동으로 제작돼 있다. 상생의 손에는 시시때때로 갈매기들이 날아와 앉는다. 지친 날개를 잠시 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출과 손의 조화는 정말 절묘한 풍광을 연출한다. 시간만 잘 맞춘다면 상생의 손이 떠오르는 해를 손으로 밀어 올리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이때 바다는 이글이글 끓어 오로는 용광로의 붉은 빛이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일순 뜨겁게 타오르게 만든다.(실제 벌건 쇳물을 생산하는 포스코도 포항에 있다.) 이 때문에 새해 아침은 물론 날씨가 좋은 날에는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해맞이 고장으로 유명해 졌다.

포항 호미곶에서는 인심도 남다르다. 새해 첫날에는 포항시 자원봉사센터 회원들이 밤새 정성과 사랑으로 끓인 떡국을 서로 나눠 먹는다. 새해의 희망을 나누는 호미곶 한민족해맞이축전 백미인 ‘1만명 떡국 나눔’ 행사는 장관이다. 특수제작된 대형 가마솥에서 장작으로 끓여내는 떡국의 별미로 겨울의 강추위도 잠시 잊을 수 있다고 한다.

상생의 손을 오래 지켜보다가 호미곶 등대 방향으로 발길을 이었다. 조금씩 저녁이 내리는 바다를 밝힐 등대의 자태가 궁금하기도 했다. 호미곶 등대는 장쾌한 동해를 마주하고 우뚝 서 있다. 등대의 외관은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아름답다. 순백색의 등대는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다. 

▲ 동해 마주하고 우뚝 선 호미곶 등대
등대의 높이는 26.4m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으며, 둘레는 하부 24m, 상부 17m다. 광력(光力)은 1000촉으로 16마일 해상 밖까지 등불이 보이고 2마일 해상 밖까지 들리는 안개신호기가 설치돼 있다.

호미곶 등대는 나이가 제법된다. 건립된 지 100년이 넘었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이 시공해 1908년 4월 착공했다. 1908년 12월 처음으로 점등한 이후, 지금까지 동해의 영일만과 그 주변을 지나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돕고 있다.

호미곶 등대 주변은 유명 관광지로 항상 인파가 북적거린다. 호미곶해맞이 광장이 조성돼 있고 새천년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반드시 한번 들러봐야 할 국립등대박물관이 있다. 등대박물관은 지난 1985년 2월 7일에 처음 문을 열었다. 
2000년 확장사업을 마무리해 등대원 생활관, 운항 체험실, 등대 유물관, 등대 과학관, 해양수산관, 수상전시관, 야외전시관, 테마 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한국 등대의 발달사와 각종 해양 수산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항로표지 유물 및 관련 자료 320종, 4266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585점을 항로표지의 역할과 기능, 역사, 생활 등으로 분류 전시하고 있다. 

항상 길을 묻고, 나아갈 곳을 응시하는 우리 네 삶과 등대의 숙명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최동단인 포항 호미곶에 서서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니, 아득하면서도 무언가 가슴 속에서 뜨거운 태양처럼 벅차 오르는 감흥이 느껴졌다. 일출은 언제나 희망을 상징한다. 
 

▲ 바다와 육지가 나눠지고 옛 추억이 공존하는 곳 만리포
만리포 사랑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그립고 안타까워 울던 밤아~” 태안군 만리포는 한반도의 최서단이다. 바다와 육지가 나눠지고, 첫 사랑과 옛 추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태안반도 서쪽에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을 대천, 변사해수욕장과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서해의 해수욕장은 대부분 백사장이라기 보다는 뻘에 가깝게 질척거린다. 반면 만리포 해수욕장은 그나마 백사장에 가까운 색깔과 질감을 지녔다. 썰물이 빠져나가면 백사장 바닥이 제법 단단해져 신발을 신고도 발이 모래 속으로 빠지지 않고 걸어나갈 수 있다. 

모래사장의 길이만 2km다. 폭도 100m에 달해서 축구장 3개 정도가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평균 수심이 1~2m 정도로 가족끼리 놀러와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만리포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편이지만, 해변이 넓고 완만한 것이 장점이며 뒤에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식수도 풍부하다. 특히 낙조가 일품이다. 7000여 종의 각종 식물이 전시되어 있는 식물원이 있다. 

▲ 태안팔경의 제1경으로 불리는 만리포 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은 태안군을 가로지르는 32번 국도의 가장 끝부분에 있으며 태안팔경 제1경으로 불릴만큼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주변에는 태안팔경인 할미할아비바위, 안면송림, 신두사구, 안흥성, 가의도 등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는 만리포 사랑 노래비와 정서진(正西津)을 나타내는 표지석이 같이 있다. <만리포 사랑>이란 노래는 KBS 가요무대를 즐겨 본 세대라면 단박에 흥얼거리는 경쾌한 리듬의 노래다. <울고 넘는 박달재>를 히트시킨 반야월이 작사를 했다. 한때 만리포에는 인천까지 드나드는 여객선이 운항했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만리포에서 첫 사랑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 만리포 사랑이다.

그런데 지도상으로 엄밀히 따지면 만리포는 정서진이 아니다.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가 우리나라의 섬과 연륙교로 이어진 섬을 제외한, 육지 최서단이다. 모항항 선착장을 검색하면 쉽다. 

모항리 최서쪽에는 정서진 표지석이나 특별히 정서진을 나타내는 기념비 같은 것도 없는 것 같다. 네비게이션에 모항리 최서단을 검색하고 달려보면, 그냥 흔한 시골길이 이어질 뿐이다. 끝까지 차로 이동하기는 어렵고 내려서 걸어야 한다. 인적도 드물고 집도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 최서단 항구 모항항, 계절마다 다양한 체험행사 진행
최서단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모항리에서 직선거리로 1km 떨어진 모항항 주변이다. 만리포 해수욕장에 이어 꼭 들러 볼만한 포구다. 포구인만큼 싱싱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만리포 해변에서 언덕 하나 넘으면 드러나는 곳이라서 알만한 사람들이 만리포 해변에서 놀다가 허기를 채우러 온다. 모항항에는 바다로 들고나는 배들이 빼곡히 차있다. 지근거리에서 배 한 척 구경하기 힘든 만리포 해변 보다, 만리포 사랑 노래는 모항항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태안군은 일년 내내 즐길 거리가 넘친다. 3~5월까지는 꽃게철이라 음식점마다 북적이고. 태안육쪽마늘캐기체험(6월)·몽산포모래조각페스티벌(7월)·백사장대하축제(10월) 등 체험형 행사도 다양하게 이어진다. 

태안군은 동쪽을 빼고는 3면이 모두 바다인 반도다. 태안에 갈 때마다 섬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이 때문이다. 태안반도에는 사람이 많이 찾고 즐기는 최서단, 만리포 해수욕장이 있고, 아는 사람들만 찾는 최서단 마을 모항항이 있다. 그리고 만리포 사랑 노래를 떠올리게 만드는 옛 추억도 기념비처럼 서 있다.

왕진화 기자  wjh90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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