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나흘간의 명승부 끝에 역전 우승을 차지한 가타오카 다이스케(29ㆍ일본)의 자축 세리머니다. 그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시즌 첫 우승이자 통산 3승을 장식하며 갤러리 환호를 만끽했다. 지난 9월 24일 끝난 시즌 17번째 대회 아시아퍼시픽 다이아몬드 컵 골프(총상금 1억5000만엔ㆍ약 15억원) 최종 4라운드 18번홀(파5) 그린 풍경이다. 
마지막까지 살얼음판 승부를 연출한 이 대회는 남자 선수들의 호쾌한 장타력과 고도의 경기력이 갤러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대회장인 지바현 칼레도니안 골프클럽엔 나흘간 5661명(1일 평균 1415명)의 유로 관객이 입장했다. 10년 전만 해도 대회당 평균 1만명 이상의 갤러리가 다녀갈 만큼 JGTO 인기는 상종가였다. 더구나 대회장이 도쿄도 인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지난 9월 15일부터 사흘간 열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스텝업(2부) 투어 시즌 16번째 대회 산요신문 레이디스 컵은 혼슈 서부의 작은 도시 오카야마현 다마노시의 도지가오카 마린힐스 골프클럽에서 열렸지만 첫날부터 약 4000명의 유료 관객이 입장했다. 사흘간 자유 입장권 가격은 3000엔(약 3만원)이라는 점과 지방 소도시에서 열린 2부 투어 대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 기록이다.
갤러리 입장 통계는 일본 남녀 프로골프 투어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지금의 일본 남녀 프로골프 투어는 ‘여고남저(女高男低)’ 현장이 뚜렷다. 대회 수는 물론 상금규모, 갤러리 수, 스폰서, TV 시청률 등 모든 면에서 여자 대회가 남자 대회에 앞서 있다. 

JGTO는 올 시즌 30개 대회에서 총상금 35억9475만엔(약 364억만원)을 놓고 펼쳐지는 반면 JLPGA 투어는 38개 대회 37억1500만엔(약 376억원) 규모로 치러지고 있다. 
이 같은 ‘여고남저’ 현상이 언제부터였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대략 2010년 이후라는 게 일본골프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JGTO 대회장을 가득 메웠던 갤러리와 넘쳐나는 스폰서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JGTO 인기 하락의 첫 번째 원인은 TVㆍ인터넷 등 미디어의 발달에 있다는 게 다수 일본 골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세계 톱랭커들과 일본 선수들의 경기력 사이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만 확인했다는 것이다. 

특히 장타력과 정교함, 거기에 훈남 외모와 깔끔한 매너까지 갖춘 이시카와 료(26)의 부진은 JGTO 흥행에 찬물을 끼얹었다. 2009년 일본 골프팬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안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진출했지만 잦은 허리 부상과 슬럼프에 시달리며 변변한 성적 한 번 올리지 못했다. 
이시카와가 떠난 JGTO엔 ‘신성’ 마쓰야마 히데키(25)가 급부상했다. 마쓰야마는 2014년 PGA 투어에 본격 데뷔했고, 지난해 웨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은 3차례나 정상에 오르며 세계랭킹 3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마쓰야마에 대한 일본 골프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해 리우올림픽 불참을 두고 ‘이시카와였다면 불참했을까’라는 질타가 이어지는 등 이시카와의 상품성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프로골프협회(JPGA)와 JGTO의 양분화 과정에서 발생한 알력싸움은 골프팬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그 과정에서 골프팬과 스폰서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선수들의 이기적 행동도 흥행 역전의 빌미가 됐다. 골프팬과 스폰서를 외면한 다수 선수들의 불성실한 행동이 이어지면서 갤러리 수와 스폰서 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후발 주자였던 JLPGA 투어는 JGTO의 침체가 반면교사가 됐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선수들이 투어를 주도하고 있지만 JGTO 대회장에선 찾아볼 수 없던 팬서비스를 도입, 두터운 팬덤 구축에 성공했다. 
미야자토 아이, 요코미네 사쿠라(이상 32) 등 스타플레이어의 해외 진출로 인한 스타 부재는 투어 흥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실력과 미모, 매너를 갖춘 스타플레이어가 매년 새롭게 JLPGA 투어 무대를 빛냈다. 

JLPGA 투어 출신 사업가 김애숙(KPS 대표) 씨는 “이보미, 김하늘 등 한국선수들의 선전이 오히려 JLPGA 투어 흥행에 도움을 줬다. 실력은 물론이고 깔끔한 플레이 매너와 성실한 팬서비스는 일본 내에서도 ‘한국선수들을 배워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골프경기에서 팬서비스와 매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하고 있다”며 JGTO 침체와 JLPGA 투어 흥행 상관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상민 기자  ohsm31@yahoo.co.jp

<저작권자 © 레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