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 아나우 호수가를 자전거로 트래킹하는 중에

12월로 접어들어 이틀째를 맞이했다. 우리는 쾌청한 날씨에 자전거로 호수 주변을 라이딩하기로 했다. 홀팍에서 호수를 끼고 돌아 건너편으로 가보았다. 상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며 콧노래가 절로 나는 즐거운 라이딩이다. 

호수 건너편에 가보니 도로변에 그림 같은 골프장 코스가 보였다. 골프장이 틀림 없는데 라운드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이상국 사장이 언덕 위 클럽하우스에 가 봐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 좋은 날씨에 골프하는 사람이 없는 골프장이라니… 폐쇄 골프장이라 판단하기엔 상태가 너무 좋은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일단 돌아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다시 와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상쾌한 날씨에 이불을 말리고 호숫가로 나왔다. 호숫가 카페에 앉아 중국계 아가씨가 내려준 향긋한 커피 한잔과 뉴질랜드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강무희 사장은 점심때가 되자 점심식사로 비빔국수를 시도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린피 봉투와 스코어카드 비치용 캐비넷

식후에 다시 골프장으로 갔다. 여전히 골프장에는 골프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말 문을 닫은 건가? 그런데 클럽하우스 출입문 옆에 나무상자가 보여 열어 보니 “Green Fee Envelopes and Scorecards are in this cabinet” 라는 문구가 보였다. 요금은 얼마인가 보니 “NZ Golf Affilited Members $30.00 per Round / Cart Hire $35.00 / Club Hire $25.00”라고 쓰인 안내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문 아래에는 “떠날 때는 문을 꼭 닫아 주시면 고맙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우리가 처음 경험한 무인 자율 테 아나우 골프장의 이색 문구인 것이다. 유쾌한 마음으로 라운드를 시작했다. 

이상국 사장은 트래킹이 더 좋다며 케플러 트랙(Kepler Track)으로 떠났고 나머지는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 돌아오니 노인 몇 분이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맥주를 몇 병 달라고 하니 일흔 살은 넘어 보이는 노인이 냉장고로 가 시원한 맥주를 내오신다. 주인이란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하면서 골프장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이구동성으로 내일 한번 더하자고 한다. 현영길 사장과 이상국 사장은 다우트풀 사운드로 당일 크루즈여행을 예약해놓아 어쩔 수 없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케플러 트랙에서 돌아 온 이상국 사장이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겠다며 호숫가 호젓한 곳으로 데리고 갔다. 모처럼 햇살이 따가워 옷을 벗고 테아나우 호수에 풍덩 몸을 담갔다. 오랜 만에 유년으로 돌아간 우리는 물장구치며 멱을 감았다. 즐거운 하루였다. 저녁은 뉴질랜드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으로 우아한 식사를 하고 나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튿날, 우리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국 사장과 현영길 사장은 다우트풀 사운드(Doubtful Sound) 크루즈 여행을 떠났고 나머지는 골프장으로 갔다. 뒤따라 온 골프장 사장이 문만 열어주고 비가 멎으면 마음껏 골프를 치라고 하고는 치과를 간단다. 

오직 우리만 골프를 치는 색다른 경험

우리는 11시경 비가 멎어 라운드를 시작했다. 전반 9홀을 돌고 배가 고파 클럽하우스에 들렀더니 노령의 사장이 컴퓨터에 무엇인가 열심히 입력하고 있었다. 회원들이 넣은 스코어 카드를 꺼내 전산입력하고 있었다. 클럽하우스 주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물론 사장이 허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18홀 그린피만 받고는 퇴근하면서 마음껏 치고 가라니 우리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 넓은 골프장에 오직 우리만이 골프를 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상국 사장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어 28홀만 돌고 약속 장소로 부랴부랴 가니 두 사람은 벌써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 크레이피쉬(Crayfish, 바다가재 종류)를 강무희 사장이 뉴질랜드에선 꼭 먹고 가야 한다며 예약한 식당에 가보니 오늘 크레이피쉬가 안 들어 왔단다. 어쩔 수 없이 인근의 이태리 식당에서 크림해물 파스타와 마르기레타 피자로 대신했다. 

오늘은 홀팍이 아닌 호숫가 주차장(kepler track Trail Head & Information)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주차장에는 화장실만 있어 새벽에 볼일 보러 나오니 하늘에 엄청난 별들이 하얗게 쏟아진다.

글·사진/박경제 (여행가·이로움 대표) 강무희 (전 동양증권/자산운용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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