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의 벙커는 잘못된 샷에 대한 응징으로 샷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밋밋한 경관을 수려하게 가꾸는 등 다양한 기능으로 ‘골프장의 개성’을 부여한다. 실제로 별난 모양의 벙커는 골프장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마케팅 포인트의 역할도 수행한다. 골프장의 벙커는 본래 토끼 등의 야생동물이 파놓은 굴이 시초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골프장의 다양한 의미와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벙커는 크기와 높이, 위치가 제각기 다르고, 모래의 종류와 생김새도 다르다. 때문에 쉽게 탈출하기가 어렵고, 골퍼들도 두려워한다. 다만 워터해저드 옆이나 포대 그린 뒤쪽의 벙커는 더 나쁜 상황을 막아주는 순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최악의 상황을 막아주는 고마운 벙커인 셈이다. 

미국골프협회(USGA)의 벙커 규정에는 입자의 크기가 0.25~ 1.0mm인 모래가 최소 65% 이상 채워져야 한다. 벙커를 보면 그 골프장의 수준을 가늠할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벙커를 깔끔하게 관리하는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고 꾸준히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모래의 굵기나 관리 상태에 따라 벙커 샷도 달라진다. 노련한 고수들은 벙커에 들어가면서 발로 비벼서 어떤 샷을 해야 할 지를 미리 결정한다. 모래가 굵고 딱딱하면 마치 맨 땅에 있는 볼을 때리듯이 ‘펀치 샷’ 스타일로 볼을 정확하게 찍어 치면 된다. 모래가 아주 부드럽다면 볼 뒤쪽을 정확하게 떠내는, 그야말로 정통 벙커 샷이 필요하다.

국내에는 페어웨이 전체가 벙커로 둘러싸인 파3 홀도 있다. 스카이72 오션 코스 17번 홀과 제주 제피로스의 마운틴 6번 홀이 대표적이다. 하나의 벙커가 그린을 온통 둘러싸고 있어 아일랜드 홀의 느낌을 준다. 이런 홀에서는 클럽을 정확하게 선택해 온 그린을 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그런가 하면 강원도 고성 파인리즈의 레이크 코스 9번 홀의 경우는 워터해저드를 따라 흐르는 벙커의 길이가 무려 1.1km에 이른다. 8번 홀 페어웨이에서 시작되어 9번 홀 그린까지 이어진다. 벙커 길이로는 국내 최대다. 

페어웨이 벙커 모양이 색다른 홀도 있다. 렉스필드의 레이크 7번 홀에는 경북 안동 사암에서 검은 알갱이를 추출한 모래를 깔아 이름을 ‘블랙홀’이라 붙였다. 강원 삼척의 블랙밸리는 12번 홀에 5개의 벙커가 있는데 이중 하나는 흰 벙커, 주변 4개는 블랙벙커로 조성했다. 골프장이 위치한 곳이 원래는 탄광 지역이었다는 의미를 담았다.

정찬필 기자  gvd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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