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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민의 사람수첩] ‘늦깎이 프로골퍼’ 강종철 회장, 체육학 박사 과정 통과 “이젠 내가 가진 걸 나눠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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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캠퍼스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긴 언덕길과 칼바람이 기자를 맞이할 뿐이다. 칼바람을 뚫고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니 대운동장과 마주한 6층짜리 강의동이 눈에 들어왔다. 용인대학교 무도대학이다. 강의동 6층에는 생체역학실험실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내려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늦깎이 프로골퍼’ 강종철(68) 회장이다.

“어서 오셔!” 강 회장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칼바람 덕에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기자의 손을 어루만지며 어린 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한 장의 명함을 건넸다.

    

“이전과 달라진 게 있어서(웃음).” 그의 웃음이 수줍게 변했다. 명함엔 ‘체육학 박사’라는 직함이 선명했다. “이번에 박사과정을 통과했는데 오늘(1월 10일) 논문이 나오는 날이야.” 그의 수줍은 미소는 흐뭇한 미소로 바뀌었다.

골프는 강 회장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고교 중퇴 중소기업 대표였던 1997년 친목 도모와 건강을 위해 골프를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8세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의지가 강했던 강 회장은 2005년 57세의 나이에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자격을 취득해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건 신호탄에 불과했다. 밤낮없이 골프에 미쳐 있던 그는 집 근처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해 골프연구소(일명 아지트)를 만드는가 하면 등산 스틱 대신 (7번) 아이언을 들고 산에 오르며 체력을 길렀다. 스윙 중 의문이 생기면 어떤 방법으로든 알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던 강 회장이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안되겠어. 대학에 들어가서 골프를 제대로 배워야겠어.” 2007년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고교 중퇴가 최종 학력이던 그는 주변 사람들 모르게 검정고시를 패스했다.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나씩 준비해왔던 모양이다.

이듬해인 2008년 강 회장은 용인대학교 골프학과에 입학해 마흔 살 가까이 어린 학생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난의 학업’을 이어갔다. 회사에서 ‘회장님’ 소리를 듣던 그에게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체육대학 생활이 쉬울 리는 없었다.

그러나 강 회장은 권위의식은 버리고 ‘08학번 강종철’로서 어린 학생들 곁으로 다가갔다. 선배들에겐 깍듯이 예의를 갖췄고, 후배들에겐 ‘이웃집 아저씨’를 자처했다.

수업을 빠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매 학기 장학금을 받을 만큼 학업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강 회장은 ‘장학금을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다’라며 어린 학생들에게 모든 학기 장학금을 양보했다.

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 그는 20년간 꿈꿔온 박사과정을 통과했다. 골프 입문부터 프로 데뷔, 대학 진학, 석사학위 취득, 그리고 박사학위 취득까지 이룰 것을 다 이룬 그지만 또 다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내가 가진 걸 다른 사람과 나눠야지. 생체역학하면 다들 어렵게 생각하는데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골프 역학을 소개하려고.” 그는 변한 게 없었다. 나이와 신분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장의 명함 속에 선명한 ‘체육학 박사 강종철’이란 글자엔 20년간 남모를 땀과 눈물이 녹아 있다. 그 한 장의 명함을 수줍게 건넨 강 회장의 거친 손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돈다.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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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민  ohsm31@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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