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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민의 사람수첩] 홍진주, “시원섭섭한 한해…종착역은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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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미녀골퍼’가 그린 위에 우뚝 섰다. 무명에 가깝던 그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 2006년 가을의 어느 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장은 새로운 신데렐라 탄생에 주목했다. 프로 데뷔 후 3년간의 침묵을 깬 ‘미녀골퍼’의 반란은 KLPGA 투어 지각변동 신호탄이었다.

그는 한 달 뒤 인천 영종도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에서도 세계적인 선수들을 모조리 제치고 우승을 차지,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거치지 않고 미국 무대에 직행하는 쾌거도 이뤘다. 매년 시드 유지를 걱정하던 무명 골퍼에서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그는 2006년 가을 필드의 주역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해외 진출은 그에게 혹독한 결과를 안겼다. 결국 2년간의 LPGA 투어 생활을 접고 국내 무대로 유턴한 그는 아메리칸드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팬들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꼭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기 엄마가 된 그는 다시 한 번 ‘가을의 전설’을 써내려갔다. 올해 출전한 29개 대회 중 28번째 대회에서 10년 만의 극적인 우승을 달성하며 ‘미녀골퍼’ 신드롬을 재현했다. 그는 홍진주(33ㆍ대방건설)다.

길고 긴 시즌을 마친 그는 프로골퍼가 아닌 주부로 되돌아갔다. 그간 소홀했던 가사와 부쩍 커버린 아들 (박)은재(3) 군을 돌보며 가을의 끝자락을 만끽하고 있었다.

“시원섭섭하다. 그래도 멋진 한해였다. 무엇보다 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해 만족한다.” 홍진주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자신의 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즌 내내 그를 괴롭혔던 건 역시나 체력이었다. 그는 “시즌 중반쯤엔 집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집에선 아기를 봐야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쉴 시간이 없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대회장뿐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한해였다”고 털어놨다.

그가 체력 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운동시간을 최소화하는 일뿐이었다. 가정이 있는 만큼 훈련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일이다. 가능하면 짧은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 운동효과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홍진주는 지난 10년이란 세월을 ‘버텼다’는 말로 요약했다.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하루하루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엉뚱할지 모르지만 계획적이지 않은 삶이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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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을 이었다. “만약 계획적인 삶을 살았다면 벌써 좌절했을 지도 모른다. 성격상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살고 싶다. 안 되는 일은 받아들이면서….”

은퇴 계획에 대해서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부상을 당하거나 시드를 잃지 않는 한 계속할 생각이다. 언제 어떤 자리까지 꼭 올라가겠다는 목표는 전혀 없다. 주어진 시간ㆍ환경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는 지금도 골프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임신을 했을 땐 일본에 있었는데 골프장 주변 산을 보니 온통 푸른색이었다. 녹색이 태교에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골프장에만 가면 주변 산이나 경관을 보는 것이 그때부터 습관이 됐다.”

그의 얼굴엔 어느새 화색이 돌았다. “잔디를 깎을 때 나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그 냄새가 정말 좋다. 어릴 때부터 볏짚을 태우는 냄새가 그렇게 좋았다(웃음). 이른 아침엔 새들이 반겨주고, 온갖 꽃들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골프장 풍광이 아름다운들 가족만큼 위안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족은 홍진주 골프인생에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홍진주는 27세였던 2010년 남편 박준성(43) 씨를 만나 결혼해 아들 은재 군을 낳았다. 결혼은 그의 골프인생 전환점이었다.

그는 결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결혼을 멋모를 때 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골프를 하면서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어렸던 것 같다”며 남편 박준성 씨와의 연애시절을 회상했다.

어린 후배 골퍼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 자신이 정한 틀에 남자가 들어오기를 바란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결혼 생활이란 건 서로 맞춰가면서 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어린 후배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홍진주는 10년 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진출을 목표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LPGA 투어 무대를 밟게 됐고,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후회도 했었다. 처음 생각대로 ‘일본에 갔다면 더 잘했을 텐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3년에 6개월 정도 일본 투어를 경험했는데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코스가) 좁고 나무도 많아서 압박감이 강하게 들었다. 샷이 안 좋았던 것도 아닌데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재팬 드림도 수포로 돌아갔다.

“준비 없이 떠난 것이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외국 친구들과의 어울림도 부족했다. 매니저가 있어도 언어적 문제나 정보력이 완벽하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 어둠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관록을 쌓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관록은 거짓말 같은 ‘가을의 전설’을 만들었다. 10년 전 ‘미녀골퍼’ 홍진주는 ‘엄마골퍼’라는 이름으로 더 강해져 있었다. (사진=오상민 기자)

오상민  ohsm31@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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