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마골프 캐주얼 로고 모자와 르꼬끄 골프 의상을 입은 갤러리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혼마골프 직원도, 르꼬끄 골프 관계자도 아니다. 지난해 상금왕이자 올 시즌 상금순위 1위 이보미(28ㆍ노부타 그룹)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골프팬들이다.

이들은 매 대회마다 이보미의 플레이를 관전하기 위해 갤러리로 나선다. 흥미로운 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보미의 후원사 제품으로 한껏 멋을 낸다는 점이다. 이보미와 호흡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이보미 응원단은 어린 아이부터 70대 이상의 고령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이보미라는 이름 자체가 일본 골프계의 트렌드이자 중심이 됐다. 스타 부재로 인기 추락을 우려하던 JLPGA 투어로선 두 손을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 이보미가 또 하나의 신기록을 작성했다. 한 시즌 최소 경기 1억엔(약 10억9000만원) 돌파다.

이보미는 지난 7일 끝난 메이지컵(총상금 9000만엔ㆍ약 9억8000만원)에서 정상에 올라 올 시즌 14경기(45라운드) 만에 상금 1억엔을 돌파했다.

안선주(29)는 지난 2011년 15경기(49라운드) 만에 1억엔을 돌파해 이 부문 신기록을 수립했고, 지난해 7승을 달성한 이보미는 어스ㆍ몬다민컵 우승으로 역시 15경기(49라운드) 만에 1억엔을 돌파하며 안선주와 타이를 이뤘다.

그리고 올 시즌 김하늘(하이트진로), 신지애(이상 28ㆍ스리본드)라는 막강한 경쟁자들과의 치열한 우승 경쟁 속에서 값진 기록을 탄생시켰다.

이보미는 올 시즌 대회당 792만2952엔(약 8680만원), 라운드 당 246만4918엔(약 2700만원)을 벌어들였다. 하반기 남은 16개 대회 중 메이저는 3개나 된다. 상금 규모도 상반기보다 큰 것을 감안하면 2년 연속 상금 2억엔 돌파 가능성도 기대할 만하다.

이보미는 지난해 사상 최초 2억엔 돌파와 남녀 프로골프 투어를 통틀어 최다 금액 기록(2억3049만엔ㆍ약 25억원)을 갈아치웠다. 올해는 개막전 이후 12개 대회 연속 10과 11개 대회 연속 톱5라는 새로운 기록도 달성했다.

이보미가 6년간 JLPGA 투어 무대에서 세운 기록만 나열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의 기록 행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2011년 안선주가 수립한 2년 연속 상금왕과 고(故) 구옥희와 전미정(34ㆍ진로재팬)의 통산 23승, 그리고 후도 유리(일본)의 통산 상금 기록(13억4840만431엔ㆍ약 147억원)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이보미는 지금까지 JLPGA 투어 144개 대회에 출전해 18승을 달성하며 6억6986만9250엔(약 73억원)을 모았다. 앞으로 6승만 더하면 한국인 JLPGA 투어 최다승 기록도 갈아치울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우뚝 섰다는 점에서 그의 신기록 행진이 더 유쾌한 기분으로 다가온다. 고(故) 구옥희를 시작으로 이지희(37), 전미정, 안선주 등 한국 여자 골프를 대표하는 레전드들이 JLPGA 투어를 호령했지만 주연일 수는 없었다. 한국 선수들의 선전과 대회 흥행 사이엔 늘 미묘한 상관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한 공식’은 이보미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이보미의 모자와 이보미의 의상, 그리고 이보미의 사용 클럽(스펙)은 일본 골프계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이젠 이보미없는 JLPGA 투어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흥행보증수표가 됐다.

이방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하게 주연으로 부상한 이보미의 기록 행진이 유쾌한 이유다. 결코 돈으론 환산할 수 없는 경제적 가치를 수반하고 있기에 그의 존재감은 더 커 보인다. (사진=오상민 기자 : 이보미와 그의 캐디 시미즈　시게노리)

오상민  ohsm31@yahoo.c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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